"내 몸은 소중해요", "싫어요는 용감한 말이에요"
“성교육은 정보가 아니라 태도입니다”
과거에는 성교육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, 사춘기 무렵에나 시작되는 ‘특별한 교육’이라고 여겨졌습니다.
하지만 요즘은 만 4세 유아들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"내 몸은 소중해요", "싫어요는 용감한 말이에요" 같은 교육을 받으며 성 감수성을 키워가고 있습니다.
성교육은 아이의 연령에 맞춰 ‘생활 속에서, 반복적으로’ 이루어져야 하는 감정 교육입니다.
그렇다면 부모는 아이에게 어떻게 성교육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?
1.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
- 아이의 성기를 ‘거기’, ‘앞뒤’, ‘꼬추’, ‘음냥이’ 같은 말로 부르는 것은
무의식적으로 성기를 숨기고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. - 아이가 자기 몸을 정확하게 알고, 건강한 자기결정권을 갖기 위해선
‘음경’, ‘음순’, ‘항문’ 등 정확한 명칭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이 첫걸음입니다. - 이는 성폭력 예방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.
낯선 어른이 부적절한 접근을 했을 때,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은
아이의 안전을 지키는 큰 힘이 됩니다.
2. "안 돼"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기
- 아이가 누군가의 스킨십을 거부하거나 불편해할 때,
“왜 그래~ 할머니는 너 예뻐서 그런 거야~”라고 넘기지 마세요. - “안아주는 게 싫었구나. 네 감정을 말해줘서 고마워.”
이렇게 반응하면, 아이는 자기 몸에 대한 권리 의식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됩니다. - 성교육은 결국 ‘동의(consent)’에 대한 가르침입니다.
타인의 감정과 몸을 존중하는 만큼, 자신의 감정과 몸도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
부모의 말과 행동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.
3. 성교육은 ‘성’만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
- 성교육은 신체 변화에 대한 정보 전달도 필요하지만,
그보다 중요한 건 **‘감정’, ‘관계’, ‘자존감’**에 대한 가르침입니다. - 예를 들어, 아이가 동화를 읽고 “저 사람은 왜 화가 났어?”라고 물었을 때,
“어떤 감정을 느꼈을까?”, “그럴 땐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?”라고
감정에 귀 기울여주는 연습을 함께 하는 것 역시 훌륭한 성교육입니다. - 결국 성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입니다.
아이가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을 기르는 것은
성에 대한 바른 태도를 기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밑바탕이 됩니다.
4. ‘사랑’과 ‘몸’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
- 아이가 “아기는 어떻게 생겨?”, “엄마 아빠는 왜 결혼했어?”라고 물을 때,
당황해서 얼버무리기보다, 아이 눈높이에 맞는 진지한 대답을 해 주세요.- 예: “아기는 엄마 아빠가 서로 많이 사랑하고, 아기의 씨앗이 만날 때 생겨.”
- 아이는 부모의 말투와 표정, 태도에서
어떤 질문은 해도 되는지, 어떤 이야기는 부끄러운 것인지 금세 배웁니다. - 부끄러워하지 않고, 성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집.
그 자체가 최고의 성교육 환경입니다.
- 성기 이름을 정확히 말하기
– 음경, 음순, 가슴, 항문 등 정확한 명칭 사용 - 감정 묻기, 감정 이름 붙여주기
– “기분이 어때?” “당황했구나” “무섭고 화났을 수도 있겠네” - 질문을 피하지 않기
– “아기는 어떻게 생겨?” → “아기는 사랑하는 어른들의 몸을 통해 생겨” - 위험을 ‘구체적으로’ 알려주기
– “누가 너 몸을 만지거나 사진을 찍자고 하면 싫다고 말하고 엄마에게 말하기”
부모가 먼저 건강한 성의식을 갖는 것이 시작입니다
부모가 스스로 성에 대해 막연한 죄책감이나 불편함,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있다면
그 어떤 성교육 이론도 아이에게 전달되기 어렵습니다.
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성교육은
“네 몸은 소중해”,
“네 감정은 존중받아야 해”,
“사랑은 서로를 아끼는 거야”
라고 말해줄 수 있는 부모의 태도입니다.
말은 아이에게 '힘'이 됩니다
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안전장치는
“표현할 수 있는 언어”를 가르쳐주는 것입니다.
그 말 덕분에 아이는
모호하거나 이상한 상황에서도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고,
누군가의 부적절한 행동 앞에서도
자신을 지킬 준비가 된 사람으로 자라납니다.
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,
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부모가 곁에 있다는 믿음입니다.